진주 김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진주 김씨는 진주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로, 신라계와 가락계 두 계통으로 나뉜다. 신라계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김추를 시조로 하며, 가락계는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을 시조로 한다. 두 계통은 중시조를 공유하면서 시조를 달리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진주 김씨는 다양한 분파를 가지고 있으며, 각 계통에서 여러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진주 김씨 - 김원술
김원술은 신라 진골 귀족이자 김유신의 아들로, 당나라와의 전투 패배 후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매소성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원술 설화의 주인공이자 진주 김씨의 시조이다. 
| 진주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
| 진주 김씨 | |
| 기본 정보 | |
| 시조 | |
| 시조 | 김추(金錘) | 
| 또 다른 시조 | 김원술(金元述) | 
| 원시조 | 김알지(金閼智) | 
| 집성촌 | |
| 인물 | |
| 주요 인물 | 김사성 | 
| 인구 통계 | |
| 2015년 인구 | 22,308명 | 
2. 역사
진주 김씨(晋州 金氏)는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동성동본이면서도 연원을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2. 1. 신라계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로, 고려에서 삼한찬문공신(三韓贊文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 참지부사(參知府使)를 지내고 진성군(晉城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관향을 진주로 삼았다.2. 2. 가락계
김원술은 김유신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했을 때 출전하였다. 격전 끝에 담릉(淡陵)의 만류로 후퇴하였는데, 왕명을 어기고 가훈(家訓)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하여 태백산에 들어갔다.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당군(唐軍)을 크게 섬멸하였으나 끝내 어머니의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김원술은 이를 한탄하여 진주(晉州)에서 일생을 마쳤고,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진주로 삼게 되었다.2. 3. 두 계통의 연원
신라계 진주 김씨의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김알지의 28세손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후 재취한 낙랑공주 왕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중시조(中始祖)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 김무진(金茂珍)은 시조 김추의 23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다.가락계 진주 김씨가 1903년 광무 7년(계묘년)에 중시조 김무진을 같이하면서 시조를 달리하게 됨으로써 오늘날 두 계통의 진주 김씨(晋州 金氏)가 전해오게 되었다.[1]
1977년 정사보(丁巳譜. 진주 김씨 진흥군파보)에 따르면, 가락계 진주 김씨의 시조 김원술(金元述)은 가락국 김해 김씨(金海金氏) 시조 김수로왕의 13세손 대각간(大角干) 흥무왕(興武王) 김유신 장군의 둘째 아들로 되어 있다. 중시조 진양부원군 김무진은 시조 김원술의 20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3. 본관
진주(晉州)는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렸으며, 757년(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4. 분파
진주 김씨는 크게 신라계와 가락계로 나뉜다. 신라계는 부령파, 홍원파, 함열파, 영광파, 화순파, 숙천파, 용강파, 영변·안주파, 강서파 등이 있고, 가락계는 김양언을 파조로 하는 진흥파(晉興派)와 김세룡을 파조로 하는 논산파(論山派)가 있다.
4. 1. 신라계
| 파명 | 시조 | 
|---|---|
| 부령파 | 김중국(金重國) | 
| 홍원파 | 김이(金履) | 
| 함열파 | 김해용(金海用) | 
| 영광파 | 김약용(金若用) | 
| 화순파 | 김이용(金履用) | 
| 숙천파 | 김철(金鐵) | 
| 용강파 | 김승업(金勝鄴) | 
| 영변·안주파 | 김승선(金勝鄯) | 
| 강서파 | 김맹정(金孟晶) | 
4. 2. 가락계
진주 김씨에는 김양언을 파조로 하는 진흥파(晉興派)와 김세룡을 파조로 하는 논산파(論山派)가 있다.5. 항렬자
'''진주 김씨'''(신라계) 항렬표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
| ○수(洙) | 락(樂) | ○환(煥) | 재(在) | ○호(鎬) | 태(泰) | ○식(植) | 병(炳) | ○기(基) | 종(鐘) | ○구(求) | 동(東) | ○열(烈) | 요(堯) | ○현(鉉) | 영(永) | ○근(根) | 광(光) | ○곤(坤) | 석(錫) | 
'''진주 김씨'''(가락계) 항렬표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55세 | 56세 | 
|---|---|---|---|---|---|---|---|---|---|---|
| 재(載) | ○희(熙) | ○곤(坤) | ○호(鎬) | ○택(澤) | ○순(栒) | ○열(烈) | 규(奎) | ○진(鎭) | ○원(源) | ○식(植) | 
6. 인물
진주 김씨는 신라계와 가락계로 나뉘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여러 인물을 배출했다. 신라계에서는 김무진이 집현전 태학사를 지내고 진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김태는 좌찬성을 역임했다. 가락계에서는 김천우가 감찰을, 김장련이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김양언은 정묘호란 때 안주 방어전에서 공을 세우고 전사하여 진흥군으로 추봉되었다.
6. 1. 신라계
- 김무진(金茂珍): 고려 충혜왕 때 여러 벼슬을 거쳐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를 역임하고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졌다.[1]
 - 김태(金台): 김무진의 맏아들로 좌찬성(左贊成)을 지냈다.[1]
 - 김중국(金重國): 조선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1]
 - 김귀민(金貴敏):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1]
 
6. 2. 가락계
가락계 김씨는 조선 시대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가문을 빛냈다. 김천우는 감찰을 지냈고, 김장련은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김양언은 첨정 김덕수의 아들로, 광해군 때 아버지가 심하 전투에서 전사하자 군사를 모아 변방 수비에 공을 세웠다. 정묘호란 때는 안주 방어전에서 분전하다 전사하여 진흥군으로 추봉되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